<가능한 모든 조합을 차례차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시도해 본 끝에 어느 날 내가 찾던 이미지를 얻게 된>
류예준 개인전
현대미술회관
레지던시 테이블룸 결과보고전
2020. 5. 6 thu - 16 sun
관람 가능시간 : 매주 목, 금, 토, 일 11am-6pm
* 별도의 오프닝은 없음

‘가능한 모든 조합을 차례차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시도해 본 끝에 어느 날 내가 찾던 이미지를 얻게 된’은 조르주 페렉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책 <생각하기/분류하기>에서 페렉이 자기 자신의 작업 방식을 ‘퍼즐 맞추기’와 비교하면서 쓴 표현이다.
그는 이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강박적으로 기록하고, 흔적이 될만한 것들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그것들은 페렉에게 시간이 앗아 가버린 것들을 글로써 완전히 복원시키기까지에 필요한 퍼즐의 조각들이라 할 수 있었고, 그의 글쓰기는 찾고 있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헤매고, 그 조각들이 가진 경우의 수를 모두 시도하여 맞추어 보고 다시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과정과 같았다.
무의식의 영역에 침전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수집해 가시화시키는 나의 작업 과정은 페렉의 퍼즐과 맥락을 같이한다. 홈비디오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져가는 공간과 사물을 되찾게 해줄 수단이었고, 이것을 통해 복원된 머릿속의 이미지와 기억의 특성을 담아 작품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의 감각 내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가능한 모든 조합을 차례차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시도해 본 끝에 어느 날 내가 찾던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이다.

최근 우연히 20년도 더 된 홈비디오를 복구했다. 영상은 95년도, 지금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 풍경으로 시작한다. 이후에도 내 기억에는 없거나 어쩌면 떠오를 것만 같은, 10년 정도 세월의 단편들이 8mm 테이프 특유의 지직거림 속에서 꽤 오래 재생됐다.
화면을 응시하는 동안 나의 기억이 나의 의지와는 별개의 독립된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재생되고 있는 장면을 어제 겪은 것처럼 생생히 거닐었다가도 전혀 모르는 타인의 경험인 것처럼 겉돌기도 하고, 화면 귀퉁이에 등장하는 사물에 이끌려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었던 사건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내기를 반복했다.
특히 어떤 부분에서는 유년기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현재의 관점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이 낯선 기분은 영상 안과 밖의 기억들이 믿을만한 것인지 의심하게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궁금증에서 찾아본 글을 아래에 인용한다.

"기억이 다양한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조각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이 통째로 저장된다면 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뇌는 효율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키워드 중심으로 적절히 여러 폴더에 분배해 놓았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끄집어내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입력한 시점보다는 기억을 인출해 내는 시점의 감정이나 처지, 판단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한 연결되지 않은 필름 조각을 보고 그사이의 이야기를 전체적인 개연성에 따라 재구성한다." - 하지현, 『청소년을 위한 정신 의학 에세이』, 해냄, 2012

똑같은 기억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번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내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작업의 출발은 사라진 원본의 시간처럼 현재의 내 시각으로 재구성된 기억도 사라지기 전에 작업으로써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홈비디오에 등장하는 공간과 사물들을 모티브로 한 이미지를 입체적 페인팅으로 구현하는 동시에, 작업행위와 방법적인 부분으로 기억이 재구성되는 방식을 녹여내고자 했다. 설치된 덩어리들은 어린 나의 주변에 존재했던 사물의 형태를 모방하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재조명되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재구성되어 원래의 의미를 잃은 과거의 사건처럼 전혀 다른 의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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